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어떤 계기로 이자리에 왔는지
바우(전승욱)
장례협동조합에 대한 기획, 연구를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안에서 장례 부분이 없다. 고민은 어떻게 사회적 경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거지만 사업만 하는 걸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지금 석사 연구과정. 열심히 연구작업도 계속 해나아가야 장레든 뭐든 사회적 경제 안에서 먹고 살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곳이 아는 곳이 없어서 선택했다.
사랑의 추억(안순종)
연구소를 만든 부분을 굉장히 긍정적. 주민연대 안에서 2015년도 쯤에 안에 이런 연구소가 있었다. 그게 있다가 어느정도 사라진 상태엿고 어느 순간 정책위가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좀더 지역 안에서 순기능을 해보자 다른 사람에게도 정책에 대한 부분에 대해 넓힐 수 있는 방법이 몰까. 연구소 라는 타이틀이 좋을 것 같다. 이름은 차츰만들어갔지만 광진구 안에 이제 시작하긴 하겠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출발이될것같다. 키워드 새로움. 새롭게 다들 뭔지 하고 있다 연습하고 있는게있다. 인생은 육십 부터라고 새로운 것들을 할 때다. 지난 것에 대해서 좋은 것은 이어가고 기존의 것은 털어내고 성찰하고 이런 시기를 걷고 있다. 연구소는 또다른 시작을 알리는 계기인 것 같다.
화련(안화연)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육년 실무를 하다가 문화도시연구소를 만든다고 해서 간사로 합류하게 되었다. 민간비영리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신걸 봤다. 한 사람이 주도해서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다보니 재미가 없어서서. 사단법인 설립부터 같이 했지만 석사논문을 쓴다는 핑계로 그만두고. 석사. 박사 하고 쭉 했던 것 같다. 애 낳고 10년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구실에서 교수님 따라 프로젝트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논문을 썻는데 논문 쓰고 그만 뒀을 때 도시재생 사업이 지역에서 시작됬었다. 그전에 도시재생 전에 주민참여형 용역으로 많이 했다. 주민 참여형도 아니고 어설픈 계획을 만들어서 찔렸다. 마음이 그랬는데 논문쓰기 위해 그만뒀는데 우리 지역이 도시재생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같이 하는게 맞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같이 하게 했다. 하면서 공동체도 경험하고. 공동체가 이웃을 만드는 일이라는걸 느끼게 됬다. 도시재생을 2년동안 즐겁게 했다. 도시재생 선정되고 센터가 들어서면서 사무국장이 되었다. 주민에서 중앙관리사가 되는 위치. 다시 관계설정하는게 힘들긴 했다. 도시재생이 고려가 충분히 된게 아니다. 주민 참여형이 10년 해도 될까말까하는던데 4년만에 만들라고 하고. 광진구 와서 여러가지 느끼는데 일반 지역에는 인적자원이 없다. 이렇게 도시재생 들어오면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밖에 안된다. 도시재생 하면서 광진구에 자문을 몇번 왔다. 박용수이사장님 만나면서 광진구는 다르다고 느꼈다. 자문을 구했던 이유는 같이 논의할 사람들이 지역에 없었다. 동작구 내에 이런 조직도없고. 그래서 광진구에 자문을 구했다. 힘들다. 지역에서 이런걸 할 수 있나 회의도 있었고, 그만두었다가 광진구 영성모임을 하면서 같이하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도 그렇고 합의된 뭐라도 연구를 해보고 대안을 만들고 실험적인 것을 해보면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만들어갈 수 있겠다. 연구소를 출범했다는 얘기를 듣고 연구소에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걸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이 생겼다.
세나무(류미선)
세가지의 인간에게 유용한 점이 나무에 있어서.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부족한 걸 공부하면서 경제와 더불어 공부를 같이 했다. 그전에는 몰랐기 때문에. 석사를 마쳤는데 재밌어서 박사를 들어갔다. 거기는 너무 길고 해야할게 많고 현장에도 있어야 해도 현장과 공부와 연구와 이런걸 같이 할 수 있는걸 꿈꿨는데. 절대로 같이 할 수 없어서 현장을 선택했다 공부는 휴학을 했지만 돌아갈 수 없다. 이제. 미련은 없다. 그것에 대한 갈망 채우지 못한 것을 연구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연구한 생성물을 취득하고 싶어서 기대고 싶은 마음으로 왔다.
생명나무(김연희)
지역에서 활동을 하면서 기업들을 협업하고 하면서 세나무의 추천으로 한신대 대학원을 다녀보자 해서 공부를 했다. 잘 끝내고 현장도 있으면서 공부도 하고 깊이 있고 재밌는 시간이었다. 현장과 이론이 대비되면서 또다른 새로운 것들이 열려져서 재밌다. 그렇게 공부하고 지역에서 사업을 하면서 저희 광사넷 공동체를 생각해볼때 대표들이 기업을 운영 유지해야 하니까 일은열심히 하는데 방향성이 없이 열심히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저도 같은 입장이었을 텐데 학문적 공부를 하다보니까 . 정체성, 정신, 공동체 안에서 방향을 잡고 이런걸 해내야 하는데 광사넷이 확장되긴하면서 각자 바쁘다. 그런 것을 찾아내는 일들을 하고 싶다. 저도 박사 과정을 하면 힘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학습모임이나 이런것들을 하면서 해야겠다. 지역에 연구소가 만들어질거라는 계획이 있다고 들어서 저는 그런 방향성이나 지역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저도 배우고 어느 부분을 감당해나가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방향성이 있다면 사업을 할 때 훨씬 긍정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함께하게 되었다. 사회적경제인이면 정체성을 체크하는 걸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지퍼/사공(강내영)
내가 있다보니 연구소가 되어버렸다. 정책위에 있었떠니 연구소가 되어버리더라. 아무 생각 없이 용수형이 오라고 해서 도와주자 해서 왔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많이 움직인다. 주로 움직이는 방향이 사람들이 필요로 해서. 일본 희망제작소,, 이런일이 필요하다해서 그 일을 하게 되고. 마침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제가 일하는 방식, 연구하는 방식은 그런 경향들이 많다. 왜 여기있냐고 하면 소장님때문에 있다. 연구소를 만들자고 한 것도 소장님이 연구소장을 하고 싶다 해서 도와줘야지 하고 있는 것. 같이하고 싶다. 이런게 있는 것 같다.
날마다(이은주)
아무생각이 없이 , 지퍼랑 똑같다. 정책위도 중간에 일년 나가있기도 했다. 다시 왔어도. 오늘 그런 이야기를 나누자고 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다. 10프로 정도는 예전에 연구, 활동을 해 ㅆ던게 지역의 시민사회를 연구를 많이 했다. 연구소를 3년간 했었는데, 작년 5월에 폐업. 로컬+협치 연구소. 3년을 했다. 서울 지역 시민사회 연구들을 했었는데, 연구자로 들어가보면 활동가분들이 니즈가 활동을 하면서 고민이 활동 지평을 넓히고 싶은데 그래서 찾는게 공부, 연구. 옛날에는 연구를 전문가한테 맡겼다면 언젠가부터 활동가들이 스스로 연구를 하고 싶어진다. 거기에 방법론적인 도움을 줬으면 하는게 니즈였다. 그걸 몇번 해봤는데 그게 전반적인 니즈여서 여기 와서도 그 부분. 연구적으로 도울 것. 배워서 남주자가 있다.
용수왈/용수형(박용수)
정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주민연대 그동안 정채위원장은 일인이 자기 생각을 고민해서 운영위원회에 자기 생각을 말하는 정도였다. 저 혼자 그렇게 하면 제 깊이 안에 갇히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 혼자 그걸 할 자신도 없어서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봤다. 인맥으로. 찾은 사람이 이은주, 강내영, 신동주님은 박사 공부를 하고 있어서 박사 졸업후에 데려오려고 했다. 정책위를 모아서 주민연대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주필주 박사도 광진구에서 주민자치회연구를 하기도 했다. 정책위를 제안했더니 선뜻 좋습니다라고 해줬다. 지금 등재를 아직도 못하고 있지만 첫번째 연구가 주민연대 시민성 참여, 지역 주민들이 주민연대를 통해 어떻게 시민성이 향상되는가 연구였는데 인사이트가 있었다. 연구를 중점으로 두고 생각해야겠다. 지역에서 이십년 활동하면서 활동한 내용을 정리하고 싶고 정리된 내용이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원리로, 원리를 얘기해주고 싶어서 정리하고 싶었다. 저 혼자였다면 못했을 텐데 정채위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저한테는 할 수 없었던 영역들을 같이 했다. 고맙고. 정책위를 연구소까지 확대해서 위원회 활동을 넘어서서 하나의 조직으로 지역사회 활동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정리해주는 어떤 단위가 필요하다. 현장활동가들이 인사이트, 전략, 방향을 갖고 활동할 ㅜㅅ 있을 거다라고 생각해서.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소. 광진 지역이 한단계더 레벨업되려면. 그런부분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정리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카누(신동주)
5년전 연구소 이야기가 나왔었음. 학생운동으 했고 경제 대안도 공부하면서 이론에 ㅈㅂ중된 측면이 있었음. 광진 현장을 택한 것은 틴한 사ㅏㅁ드이 다 광진구에 ㅏㄹ고 있고 광진 지역이 시민사회에 있어서 잘 나가고 있어서.